불과 몇 해 전 과거. 찬란하게 빛나는 재력과 영광을 끌어안고 기강을 다지던 대저택은 이제 그 명성조차 희미합니다. 온기도, 생명력도 느껴지지 않는 창백한 저택에 드나드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유령저택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멸칭까지 얻게 되었으나 과장은 아니겠지요. 어느 날, 탐사자는 아무도 발걸음하지 않는 부식된 저택으로부터 부름을 받습니다. 과거의 제자였던 저택의 집주인, KPC에게서.
어느덧, 자동타의 계기판의 속도는 130km를 돌파하였습니다!!
가을 휴가를 앞둔 여러분은 메사추세츠의 숲을 낀 도시에 위치한 별장을 대여합니다. 타인 소유인 별장을 대여한다는 점이 평범한 휴가와 다른 자극이 되지 않을까요? 가을 숲길을 따라 운전하면 해질녘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초대장 메일에 적혀 있던 문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하네요. 즐거운 가을 휴가 보내세요! 귀하의 행운을 빌며.
어느 쪽이 좋아?
여느 때와 같이 등교한 후, 급작스런 사건에 휘말려 벌어지는 3일간의 이야기.
런던의 날씨는 변덕스럽습니다. 얄궂게도 여행의 아침부터 굵은 빗줄기가 내리네요. 타이밍이 조금 안 좋긴 하지만… 하기야 1년 중 평균 164일 정도는 비가 내린다고 하니, 사실 그렇게까지 울적해 할 필요는 없을 거예요. 이런 것도 다 런던 여행의 묘미니까요. 빗물이 우산을 두드리고, 고즈넉한 템즈강에 파문이 번집니다.
세상은 멸망을 선언했다. 디스플레이스를 두른 쉘터 안에서 두 명의 아나운서가 종말에 대해 무감각히 보고했다. 정적을 찢고 가르는 뉴스는 소름 끼칠정도로 단조로웠고, 바깥은 여전히 조용했고, 인공의 비가 유리창을 사납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일상처럼 느껴질만큼 끔찍한 안정감이었다. 떠들어대던 뉴스가 꺼졌다. 귓가로 희미하게 커피 포트가 김을 뿜는 소리를 냈다. 머그컵으로 쏟아지는 액체의 아우성을 파고든 문장의 토막이 당신의 발치로 떨어진다. "여행을 하고싶어. 같이 갈래?"
덜컹. 귓전을 스치는 소음이 달콤한 잠을 깨운 순간, 탐사자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집니다. 몸을 추스른 탐사자는 본능적으로 어둑한 주변을 살핍니다. 컨테이너에 가득 들어있는 여행용 트렁크 가방. 발생지를 알 수 없으나 끊임없이 들려오는 웅웅대는 소리. 위태롭게 흔들리는 지면과 그에 따라 가누기 힘든 몸. 여긴 설마 비행기 안인 걸까요? 탐사자가 아는 객실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모습이지만 말이죠. 어쩌다 이런 곳에 오게 된 건지 기억을 더듬지만 생각나는 게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탐사자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걸요. 백지처럼 비어버린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오직 하나. 얼굴도 모를 누군가의 이름뿐입니다. KPC, KPC. 탐사자의 본능이 그의 이름을 기억합니다. 본능을 따라서 행동하십시오. 주어진 시간에 충실하게.